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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이 가졌던 민족적 기독교의 이념 김교신이 가졌던 민족적 기독교의 이념이 창간사와 폐간호의 권두언에 흐르고 있는 사상은 무엇인가? 그 것은 민족적 기독교의 이념이다. 그에 의하면 첫째, 외국의 선교사업 비에 의해서 유지되는 교회는 진정한 우리의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 이며, 둘째, 국적이 뚜렷하지 못하고 민중의 가슴과 생활에 파고들지 못하는 기독교는 우리의 기독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요, 셋째, 성서를 통하여 민족의 혼을 일깨워 앞날의 진정한 독립의 정신적 기틀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민족교육이라는 것이다. 첫째는 민족적 기독교의 이념의 탐색 및 생활화요, 둘째는 종교적 신앙과 교육적 실천의 이상적인 조화요, 셋째는 교육에 있어서 인격적 감화력의 절대성을 나타내 보임이요, 넷째는 개인잡지를 통해서 소신을 밝힘으로써 민족사회의 온 성원을 .. 2024. 5. 26.
「성서조선」의 창간사와 폐간사 김교신의 「성서조선」의 창간사와 폐간사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며김교신, 그는 이 개인 신앙잡지에 시사평, 교회평, 교육평 등도 실었지만, 가장 중시한 것은 성서연구, 민족적 신앙, 또 외국의 교파 교리나 외국의 선교회로부터의 독립신앙이었다. 그의 이런 자세와 방향은 많은 명작을 낳게 했다. 예를 들면 그 자신의 것은 「산상수훈연구」(1933년)이고, 동지로 하여금 낳게 한 것은 함석헌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성서조선」, 제61-83호)이며, 제자로 하여금 낳게 한 것은 심훈의 「상록수」의 주인공의 엄밀한 전기인 류달영의 「농촌계몽의 선구여성 최용신 소전」(1939년)이다.김교신의 사명1940년 그는 언론을 통한 복음전도에 전념하기 위해 양정중학교를 사임했으나, 동경고사의 선배인 이와무라(岩村).. 2024. 5. 25.
김교신의 생애 김교신의 생애김교신은 1901년 4월 18일 함경남도 함흥 사포리에서 부친 김념희(金念熙)와 모친 양신(楊州嵐) 사이의 장자로 태어났다. 선생의 가문은 함흥 차사 박순(朴淳)과 함께 함흥에 갔다가 죽음을 면한 김덕재(金德載)의 후예이다. 어린 시절과 유학 시절1903년, 즉 그가 두 살 때 부친은 폐암으로 요절하였다. 1912년 그는 함흥 주북의 한씨 가문의 4세 위인 한매(韓梅)와 결혼했다. 1918년에는 함흥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정측영어학교에 입학했다. 이 무렵 그는 유교적 인생관 및 사회관에 회의를 느끼고 몹시 고민하고 있었다. 하루는 노방전도에 접해 깊이 느끼는 바 있어 입신을 결심하고 바로 동경의 야라이쪼 성결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드디어는 그 교회에서 세례를 .. 2024. 5. 24.
김교신의 생애와 업적 민족의 정신적 유산근대 한국의 정신사에 길이 남아야 할 선각자 중에서 김교신 (金教臣) 선생처럼 평생을 교육의 장을 지키면서 민족의 교사, 민중의 교사, 젊은 영혼들을 일깨워 준 학교 교사, 그리고 평신도의 교사로 일관한 사람이 있을까? 이분이야말로 한국의 흙으로 빚어져 한국의 흙을 디디고 살다 한국의 흙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그래서 김교신이야말로 진정한 한국인이며, 그의 기독교야말로 진정한 한국의 기독교라고 말할 수 있다.한 인물의 평가는 관뚜껑에 못을 박고 난 다음에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저 유명한 카라일의 말이다. 죽음과 더불어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은 다음에 그 삶의 의미가 더욱 음미 평가되는 사람, 아니 평가되어야 할 사람이 있다. 필자가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김.. 2024. 5. 23.